본문 바로가기
주식/주식 자료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 이야기

by 디히치 2020. 11. 28.

 

 

다큐 "욕망과 혼돈의 기록, 도코 1991"

 

 

1985년 9월, 미국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엔화 절상을 요구했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는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은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금리를 계속 인하했다. 

금리 인하로 시중에 돈이 넘치기 시작했다. 

 

 

 

 

풀려나온 돈은 고수익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고, 곧 토지와 주식에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는 토지 불패 신화가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토지는 오르기는 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부동산 붐 뒤에는 시중 일본 은행들의 대출 경쟁이 있었다. 서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경쟁이 있었다.

대규모 은행 대출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부동산 광풍은 일본을 넘어서서 미국으로까지 이어졌다. 뉴욕의 심장 록펠러센터도 일본이 사들였다.

뿐만 아니라 해외 명화도 사들이기 시작했다.

 

 

도쿄 집 값 폭등으로 서민들은 집을 사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공공 임대주택을 얻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서민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제야 일본 은행은 빠르게 금리를 인상을 했다. 하지만 땅 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거품의 절정이 다가오는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1990년, 일본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부동산 대출을 강력히 억제하기 시작했다.

 

 

 

 

시중에 자금이 마르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대출 규제로 투기성 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일본은 거품 경제의 바벨탑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땅 값을 갚지 못한 부동산 회사, 건설 기업들이 하나씩 파산하기 시작했다.

부실 채권을 막지 못한 은행들도 하나씩 파산했다.

 

 

허리띠를 졸라매어 내 집 마련에 꿈을 이룬 서민들도 거품 붕괴의 피해자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일본 사회는 거품 경제의 교훈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 버블을 통해서 공짜 점심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는 경제 대원칙이 재확인되었다.

 

2) 버블 속에 있을 때는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고 모두가 이득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버블이 한 번 발생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커다란 비용을 치러야 한다.

 

 

댓글